Haze(6)

[카게프로]Haze 2016. 12. 9. 21:25

SIDE IN Momo Kisaragi

 "멍청한 놈……."

옆에서 키도 씨가 나즈막히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키도 씨의 「능력」으로 몸을 숨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해서 몸을 조금 더 바짝 웅크렸다(사실은 키도 씨가 무서웠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지만).

 "마, 마리, 뭐하는 거야?"
 "무기! 싸울거야!"

그 와중에 샤워기의 머리 부분을 나름대로 위협적으로 휘두르려고 노력하는 마리를 허탈하게 바라보며 나는 지금까지의 일을 떠올렸다.

*

오늘도 평소와 같이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분명 원래 등교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온갖 사람들의 인사 덕분에 1교시를 말끔하게 날려먹은 대지각. 아, 그래 내가 원래 그렇지 뭐—하고 투덜거리기에는 지친다. 내가 지각을 하는 것은 이미 학교 내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그나마의 위안이랄까, 사실은 더 우울하다. 나도 제 시간에 맞춰서 학교 오고 싶다고.

그나저나 큰일이다. 가뜩이나 성적도, 출석도 모자라서 보충까지 받으러 왔으면서 또 지각이다. 이건 전부 다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내 노래 때문이다. 가뜩이나 새 앨범이 나오는 날이다보니 더더욱 심한 편이었다. 곳곳에는 프릴에 파묻혀 죽을 것 같은 옷을 입고 상큼하게 웃고 있는 내 포스터가 널려 있어 분명 더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하아, 이젠 지친다……."

연예인이니, 아이돌이니 이젠 전부 싫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급히 신발장에서 실내화를 꺼내 신었다. 그리고 몸을 돌린 순간—

 "—아얏?!"

뭔가 딱딱한 것으로 머리를 사정없이 얻어맞았다. 놀라서 고개를 들자 내 머리를 때린 것으로 추정되는 출석부를 손에 들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백의의 남성이 서 있었다. 다름 아닌 내 담임, 타테야마 켄지로다.

 "아, 아하핫……. 아, 안녕하세요?"
 "나는 안녕하다만, 네 출석률은 안녕하지 못하구나."

출석부를 휙휙 위아래로 흔들며 말하는 담임의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나저나 오늘 1교시가 담임이라는 걸 까먹고 있었던 나는 역시 바보인걸까.

 "어이, 이젠 지각한 걸로는 그다지 뭐라 할 생각은 없거든? 그것보단 나는 '이것'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네?"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의문을 품었더니 담임은 아무 말 없이 출석부에서 어떤 종이를 나에게 건넸다. 뭐지, 하고 받아들은 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을 느꼈다.

 "거, 거짓말…!"
 "아니,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종이가 들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런 나를 담임은 짜게 식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손에 들린 종이는 저번주에 본 생물 시험지였다. 2주동안이나 보충을 받고 이젠 할 수 있어—! 하고 전쟁에서 이긴 개선장군마냥 당당하게 본 시험지의 결과물이 이렇게 되어 돌아오게 될 지는 몰랐다.

 "너 말이다……. 우선 글씨가 비뚤배뚤 엉망진창이라는 건 넘어간다 치더라도, 그 점수는……. 아, 그거냐? 2주 보충 받고 2점 받았으니 100주 보충 받으면 100점이냐?"

담임의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귀를 타고 넘어왔다. 그 말에 뭐라고 할 수 없음을 분하게 느끼며 나는 다시 시험지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분명 답은 빈칸은 커녕 답안지 칸이 모자랄 정도로 빽빽하게 적어내었는데,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어쩐지 억울하다.

 "고, 공부 열심히 했는데……."
 "뭐라고? 내 귀가 잘못된거냐? 공부한 거라고?! 아니, 너 애초에 '포유류로 분류되는 동물을 한 종류 들어라'라는 문제에 답이 '게, 연어'라니 뭘 공부한거냐고?!"
 "사, 사실은 곰, 사슴이랑 걔네랑 고민하다가 쓴 건데요……."
 "그게 답이잖아! 그보다 한 종류라고 분명히 쓰여 있는데 왜 짝으로 나오는거냐고!"
 "네? 하지만 혼자는 외롭잖아요!"
 "쓸 데 없는 동정심 발휘하지 마!"

사정없이 머리를 때리는 출석부와 무섭도록 밀려오는 담임의 딴죽을 들으며 나는 다시 시험지를 봤다. 아직도 모르겠다는 것이 이렇게 분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면 오빠가 그리워진다. 내 오빠는 나와는 완전히 다르게 어렸을 적부터 몹시 똑똑해서, 받아오는 시험지가 100점이 아닐 때가 없었다. 오빠가 「살아」있었다면 이런 문제쯤은 가르쳐달라고 했을텐데.

오빠는 2년 전,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다. 엄마는 오빠가 살아있다고 믿고 싶으신 모양이지만 냉철한 나는 이 쯤되면 오빠는 죽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고 싶지 않은 아이돌을 하고 있는 이유도 전부 오빠 때문이다. 오빠가 사라지고나서 가뜩이나 몸이 약하신 엄마는 쓰러졌고 돈을 벌기 위해 이 한 몸을 바친 것이다. 내 청춘을 돈 버는데 바치다니, 이 얼마나 희생정신이 넘쳐나는 인간이란 말인가.

—이러한 생각이나 하며 현실도피를 하고 있자니 담임의 필살 출석부 강타가 다시 한 번 날아들었다.

 "아야!"
 "너, 딴 생각이나 하고 있고 말이야. 어쨌던 이만 가 봐."
 "네?"
 "시간표 안 보냐? 오늘 보충은 1교시밖에 없었다고."

담임이 팔랑거리며 보여준 시간표는 확실히 1교시밖에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시간표를 보지 않고 다닌다는 사실이 이렇게 드러날 줄은 몰랐다.

힘없이 인사를 꾸벅 하며 실내화를 다시 갈아신자니 담임은 오봉에도 수고한다며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 다시 안 쪽으로 사라졌다. 아무래도 내가 올 때 쯔음에 일부러 여기까지 나온 모양이었다.

 "아아, 진짜 싫다……."

이 시험지를 어떻게 엄마한테 보여드리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여름의 햇빛 밑으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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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ミネ
그림쟁이 인 척 하는 평범한 잡덕 글쟁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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