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썼던 것에 내용을 추가&수정 후 재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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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며 노을 진 거리를 걸어 나갔다. 한 쪽 다리는 두터운 기브스, 한 쪽 팔은 멍청하게 묶인 붕대와 목발, 머리 전체를 휘감고도 모자라서 한 쪽 눈까지 덮어버린 붕대. 현재의 내 꼴이었다.

 

“아파......”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홀로 중얼거리며 위태롭게 걸어갔다. 형제들에게, 내 ‘사랑스러운’ 형제들에게 가자. 그러기만 한다면 이 아픔도 어느 정도는 가시리라. 그 때의 나는 그렇게 믿었다.

 

걸음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비틀비틀. 익숙하지 않은 목발을 짚는 것이 거슬렸다. 집어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든 꾹 참은 채 열심히 걸어 나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

 

어쩐지 집으로 가는 공터 쪽이 시끌벅적했다. 이 늦은 시간에, 도대체 누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아니, 사실은 약간의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내가 아는, 익숙한 목소리들이 섞여 있었기에,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 내 형제들이 나를 마중 나온 것은 아닐까 하고.

 

...그리고 그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내가 없는 그들의 행복한 모습이었다. 순간 모든 환상이, 현실이, ...내가 깨져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들로 인해 이렇게 엉망진창인 모습이 되었는데도, 어째서 내가 빠진 그들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도 훈훈하고 정다워 보이는가.

 

그것은 미치도록 견딜 수 없는 광경이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친구가 없어도 가족이 있으니 괜찮다고. 그 ‘가족’의 틀 안에는, 내가 없었다. 나는, 아아, 나는. 욱신거리는 한 쪽 눈을 부여잡았다. 그들이 던진 물건 중 하나에 맞아서 붕대 속에 잠들어버린 눈이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런 꼴이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지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왔는데. 어째서 너희들은 나를 돌아봐주지 않는 것인가. 내가 없는 세계에서 그렇게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인가.

 

어쩐지 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소리를 높여 너희들을 부를 수조차 없었다. 내가 너희를 부르는 순간, 그 ‘완벽한 행복’이 깨져나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 와중에도 내가 너희들의 행복을 깨부순다는 행위가 미칠 듯이 싫어서.

 

결국 나는 너희들의 뒷모습이 마치 선혈마냥 붉게 달아오른 노을을 넘어 어둑한 그림자마저 사라져갈 때 즈음에 겨우 입을 열었다.

 

“취급이, 전혀 달라...”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얼굴의 반을 덮은 붕대가 애처롭게 젖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나는 끝내 흐느끼지 않았다. 내가 비참하다는 것을 인정해버리면 안 된다고, 분명 그들은 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의 그들의 ‘행복’에 나를 끼워주지 못한 것이라고. 그렇게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그것이 결국 내게 독이 되어 돌아오리란 것을 희미하게 느꼈으면서도. 바보 같이.

 

겨우겨우 엉망진창이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노을은 물론이요 달마저 구름 뒤로 숨어버린 늦은 저녁이었다. 붕대투성이가 된 손으로 힘겹게 집 문을 따고 들어서자 나를 반긴 건 다름 아닌 불 꺼진 현관이었다. 그래, 다들 피곤했을 거야. 내가 없는 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 같으니까, 그리고 지금 밤이 무척이나 늦었으니까. 그래서 다들 자러 간 것이구나. 하지만 나 정도는 조금만 기다려 주었어도 괜찮았잖아. 홀로 납득하면서도 조금은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형제들 사이에서 그들의 온기를 느끼며 잠에 들자. 그러면, 지금의 기분은 조금이라도 나아질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겨우겨우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섰다. 이제, 형제들에게만 간다면. 그래서 이치마츠와 토도마츠 사이에 끼어서 잠이 들 수만 있다면.그렇다면 이 아픔도 어느 정도는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크나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망연한 표정으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이 다리로, 이 목발을 짚고, 올라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평소 잘만 오르내리던 계단이 지금의 나에게는 결코 오를 수 없는 가파른 절벽마냥 느껴졌다.

 

어쩔 수 없는 서러움이 또다시 눈물의 형태로 나를 뒤덮었다. 아파, 아파, 아파. 아까서부터 참고 참아왔던 고통이 한순간 물밀 듯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악, 하고 무너져 내리면서도 미련한 형제애가, 가족들을 향한 사랑이 그들이 깨지 않도록 비명을 억눌러냈다.

 

이 멍청한 녀석아, 그 와중에도 너는 그들을 생각하고 있어? 너를 이렇게 만든 게 누군데? 누군가가 고통에 입술을 깨무는 나를 조롱하며 비웃었다. 그러게, 그러네. 나는 언제나 배려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것이 몸에 배어서 그러하였나. 허탈함에 웃음이 잇새사이로 새어나왔다.

 

“하하....”

 

내가 처량하고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그날 밤을 현관에 쭈그려 앉아 일찍 일어난 어머니에게 발견될 때까지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

 

엉망진창이 되어서 돌아온 나를 대하는 형제들의 태도는 생각보다 더 차가웠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 장본인이라는 것을 아예 잊어버린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는 둘 째 치고, 나를 이렇게 만드는데 가장 공헌한 맷돌을 집어던진 이치마츠는 오히려 ‘죽어버리지 왜 살아 돌아왔냐’는 말도 안 되는 독설을 퍼부은 채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불쾌한 안색으로 나가버렸다. 뒤에서 왜 그러느냐며 그를 혼내는 쵸로마츠의 목소리도, 나를 슬슬 웃으며 달래는 오소마츠의 목소리도 전부 내게 와 닿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에서 맴도는 건 이치마츠의 그 말 한 마디 뿐.

 

왜 죽어버리지 않았냐고? 그러게. 나는 도대체 뭘 위해서 너희들이 준 상처를 온 몸에 안고도 이렇게 꾸역꾸역 살아서, 그래도 너희를 사랑하니까 보러오겠답시고 이 집구석에 돌아온 걸까. 너희는 어떠한 나라도 똑바로 쳐다봐 주질 않는데.

 

“어이, 카라마츠? 지금 형아 말 씹는 거?”

“미, 미안하다. 못 들었군. 뭐라고 그랬나, 형님?”

 

순간 내 어깨를 슬쩍 흔들며 나를 부르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흐릿해진 눈을 들어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더니 어쩐지 흠칫 놀라던 그는 곧 평소의 마이페이스를 되찾으며 씩 웃었다.

 

“이치마츠 말은 너무 속에 담아두지 말라구.”

“......아아.”

 

뭐, 그리고 죽으라는 말은 언제나 듣던 말이었잖아? 그니까 신경도 안 쓰이지? 하나뿐인 형은 웃으며 그렇게 마음에 대못을 박으며 나갔다. 항상 듣는 말이기 때문에 더더욱 아플 것이라는 건 생각도 못 해주는 건가.

 

배려심이 없는 것은 너나 이치마츠나 똑같다, 이 잔인한 녀석아. 그리 생각하며 그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릿하게 피 내음이 배어나왔다. 문득 울고 싶어졌다.

 

*

 

오른쪽 눈의 소생은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이주 후, 상처를 다시 한 번 정밀 검사하기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 들은 의사 선생의 선고 아닌 선고에 눈앞이 파래지는 것만 같았다. 평생 지울 수 없는 흉터를 안긴 토도마츠의 꽃병조각은 아무래도 나에게 영원한 어둠마저 안긴 모양이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건가요.”

“외상 적으로는 마츠노 씨도 알다시피 그 흉터가 남겠고,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오른쪽 눈의 실명을 제외하고도 오른팔 역시 사용이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전에 그 지독한 상처에 비하면 후유증은 생각보단 적은 편이네요. 그렇게 말하며 혀를 쯧쯧 차는 의사 선생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숙였다. 후유증이 적은 편이라고. 하하하, 마른 웃음이 저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당신이 보기엔 다행인거지만, 제 입장에서는 어느 때보다도 가장 흉하고 아픈 상처입니다.

 

그랬다. 그 누가, 형제들 때문에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겠는가. 힘없이 의사 선생에게 인사를 꾸벅 해보이고 병원을 나서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형제들에게 버림 받았다. 아아, 그렇고말고. 이것만큼 지금 나에게 가장 맞는 표현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예전부터 지겹도록 들었던 [여섯이서 하나, 하나로 여섯]이라는 말버릇이 산산조각으로 엉망진창 깨어졌다. 그래, 나는 이제 ‘육분의 일’이 아닌 ‘하나’인거야. 다시는 그 분수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어버린 단절면을 가진 하잘 것 없는 파편. 그게 나인거야.

 

나는 언제서부터 ‘괜찮’지 않았더라. 지금껏 내가 공허하게 그들에게 뱉어온 ‘괜찮아’라는 말들이 마치 메아리처럼 심장을 찔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집으로 돌아간다. 분명 돌아가면 여전히 일상이라는 그런 잔인한 위상으로 나를 찔러댈테지. 하지만 이제는 나도 몰라. 이미 만신창이다. 더 이상 죽을 곳은 없어. 그 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와장창!

 

유리컵이 깨지는 소리가 거칠게 귀를 때렸다. 형제들이 나를 연달아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귀를 타고 넘어왔다. 카라마츠! 진정해! 유리조각 밟지 않도록 움직이지 마! 솔직하게 말하자면 하나도 내게 닿지 않았다. 넘어가기 직전인 숨을 겨우 진정시키며 파랗게 질린 그들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목발 없이 바닥에 지지되어진 왼발이 지끈지끈 고통을 호소했지만 가슴을 사납게 쥐어뜯는 고통이 더 심했으므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쓰지 못했다. 이젠 한계였다.

 

“너희들..., 너희들은, 어째서! 어째서 날 항상 비참하게 만드는 건가!!”

 

지금껏 마음에 담아왔던 그 질문이 거칠게 성대를 할퀴고 튀어나왔다. 이젠 싫다. 어째서 나만, 이런 역할을 맡아야만 하는 것인가. 어째서 너희들은 나를. 대답 없는 의문만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

 

형제들에게 분노를 토하고 돌아온 손님방은 여느 때보다도 어둡고 차가웠다. 터덜터덜 너덜한 몸을 이끌고 구석으로 들어간 나는 몸을 끌어안았다. 비참하다. 비참해도 이렇게 비참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힘껏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날, 황혼 속에서 그들을 본 이후로 처음 흘리는 눈물이었다. 멍하니 바닥으로 방울져 떨어지는 눈물을 보다가 다리 속에 얼굴을 묻었다.

 

내가 화를 낸다면 그들이 조금이라도 나를 봐주고, 진심으로 사과하길 바랐다. 기대했었다. 그런 기대감을 와중에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래, 그것은 단지 기대에 불과했다. 형제들은, 나를 봐주기는커녕 내가 어째서 화를 내고 있는지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그저 공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꼴사납구나, 카라마츠. 왜 스스로를 부술 선택지를 골랐어? 아직도, 그들에게 미련이 남았어? 그 녀석들이, 너에게 조그마한 관심 조각 하나라도 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어? 육분의 일에서 떨어져나간 너에게? 배의 가치보다 아래인 녀석에게?

 

덜덜 떨리는 오른 팔을 들어 아직 붕대에 갇힌 오른 눈을 지그시 눌렀다. 죽을 뻔하고, 결코 지워지지 않을 상처와 장애를 얻은 시점에서부터 사실 나는 그들을 믿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 작은 미련이 자꾸만 나를 붙잡았다. 어릴 적 같이 뛰놀았던 기억들이 족쇄가 되어 나를 얽어매고 있었다.

 

“힘들어...”

 

지금껏 말로 내뱉지 못했던 진심을 입에 담았다.

 

“...아파.”

 

지금껏 들어오기만 하고 결코 응석 부리지 못했던 아픔을 입에 담았다.

 

“아프다.”

 

언제나 흐릿했던 말이 순간 또렷하게 다가왔다. 그래, 나는 항상 아팠다. 멋있다고 생각했던 모습은 언제나 전력으로 거부당했고 말 뿐만이 아닌 그 안에 담겼던 진심조차 언제나 묵살 당했다. 그런 내가 아프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형제들에게 드러내면 분명 미움 받는다는 그런 무의식이 고통을 표현하기는커녕 느끼는 것조차 막아왔던 것이다.

 

깨닫고 보니 알겠다. 이미 나는 그 전부터 산산조각 나 있었다. 이번을 계기로 필사적으로 붙여왔던 그 파편들이 기어코 떨어져 나온 것일 뿐, 나는 이미 깨져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깨달은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제 더 이상은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 다시는 형제들을 사랑하는 마츠노 카라마츠로 돌아갈 수 없는데. 형제들이 살아가는 이유였던 마츠노 카라마츠는, 이제 결코 살아 돌아올 수 없는데.

 

저기, 나는 어떻게 해야 해? 허공으로 내뱉어진 질문이 덧없이 공기 중으로 스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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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ミネ
그림쟁이 인 척 하는 평범한 잡덕 글쟁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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